공도현(울림)
교육 유목민입니다.
첫째 아이는 대안학교를 졸업했고, 저는 동천동에 거주한 지 6년째 되는 마을 주민입니다. 둘째 딸은 친구와 함께 목양교회 작은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느티나무도서관의 그네의자에 앉아 그네를 타기도 합니다. 이 공간들은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마음 맞는 친구들과 편안하고 안심하며 놀 수 있는 가까운 쉼터이자 놀이터입니다. 마을에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온 이들 덕분에 저와 아이들은 그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인턴십 교육장소가 되어주기도 하고, 작품 전시를 할 수 있는 미술관 카페가 되기도 하며, 공연을 펼칠 수 있는 무대로도 존재하는 이 공간들 덕분에 아이는 ‘작가’로, 저는 ‘나도 영화감독’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조금은 특별한 마을살이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난개발의 경계에 놓인 동천동과 고기동. 그 역사와 지리를 직접 조사하고 기록해낸 주민들의 손끝에서 완성된 『우리 손으로 만든 머내여지도』에 매료되어, 10년을 맞이한 동천마을네트워크의 아카이브 작업에도 용감하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마을서점, 마을빵집, 작은도서관, 마을카페, 예술과 인문, 생활공동체 등 공간마다 저마다의 색깔을 지닌 채 운영해온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온 동천마을네트워크.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마을 프로젝트들을 함께해온 10년의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는 이 작업을 통해, 저는 그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가장 먼저 향유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김지희(나디)
코로나 시기 1년 전에 동천동으로 이주하여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길가에 걸린 이런 저런 현수막을 보면서 참 신기한 동네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수지꿈학교에 입학하면서 동천마을네트워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그 정체가 무엇인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기록동천대장정에 합류하게 되었고, 10년 간 쌓인 자료를 더듬어보며 그 안에 녹아 있는 열정과 가치를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쩌다 삶의 둥지로 자리 잡은 동천동, 어쩌다 만난 인연, 어쩌다 엮인 일이 어느새 깊어졌네요. 이 또한 신기합니다.
김태희(아무)
동천마을살이 10년차이지만 아직도 마을을 낯설고 쑥스럽게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늘 궁금해하며 마을주변을 기웃거리고 살고 있습니다. 마을활동, 공동체, 환경, 생명, 민주주의, 많고 많은 거대한 담론들 앞에서 별 볼 일 없는 나의 일상을 확인하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면서도, 또 그 일상에서의 실천과 행동이 갖는 힘을 믿기에, 마을의 경계선을 살짝 넘고 있는 발가락 하나를 차마 떼어내지 못하고 마을신문, 마을블로그, 마을풍물패, 마을동아리에 가끔 풍덩 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어설프고 아슬아슬한 저의 일상이 다른 이의 일상과 만나 조금 더 힘을 내어 제가 믿고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작은 힘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저의 별 볼 일 없는 일상이 다양한 삶의 기록 중 하나로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록동천대장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김호동(네로)
조용한 가운데 예리한 관찰과 질문으로 상황을 정리해야 직성이 풀리면서도 모호함을 받아들이는 여유와 유머를 덕으로 삼습니다. 소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 만큼 그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이들을 놓치지 않는 편입니다. 기록 또한 그런 의미에서 아끼고 남기는 일에 마음을 씁니다. 그러다보니 기록과의 인연이 생겨 수지꿈학교 기록작업에 이어 어쩌다 기동대의 일원이 되어, 경험한 바 없는 일들을 기록으로 만나는 색다른 재미와 흔치 않은 마을 기록의 늪에 빠지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송추향(츄츄)
누구보다 기록에 진심인 한 사람입니다. 못 말리는 열정으로 삶을 지키고 기록을 사랑합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고, 공동체와 기록의 힘을 믿어, 비록 동네를 떠났지만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록동천대장정의 비전을 빛 삼아 먼 길을 오갔습니다. 그 시간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깁니다.
연인선(연연)
남들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거라고 믿는, 그래서 일을 잘 저지르는 사람입니다. 원래 내성적인 편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 생전 몰랐던 길로 들어서서, 사서 고생하며 늦게나마 뭐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마을이 우리 사회의 대안이라고 믿는 것까지는 좋은데,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 하면 좋을 일이 얼마나 많은지 자꾸 생각나는 게 문제입니다. 단순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도 단순하게 받아들입니다.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면 그냥 하는 바람에 기록동천대장정 일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마음으로 몸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만나 끝내 이룬다는 것이 마을에서 얻는 가장 소중하고 놀라운 경험이라 여깁니다.
전은희(나무늘보)
짧은 마을살이 경력이지만 용인기록가 활동에 참여하여 용인의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다 보니 누구보다 빨리 용인 사람, 동천 마을 주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낯선 마을 동천동이 우리 마을이 되기까지 정말 좋은 곳에, 때로는 험한 곳에 나무늘보를 불러서 데려가 주신 마을살이 선배님들께 감사드리며 이제 마을의 길잡이가 될 동천마을 기록대장정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문장을 쓰고 글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나마 숫자를 쓰고 읽기는 좀 더 수월하니 그쪽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최정미(아톰)
사람들이 모여 도모하는 일들이 잘 보여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손재주로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며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나로 만드는 것, 어지러운 길을 알아볼 수 있게 정리하는 것에 항상 함께 합니다.
기동대 1기 후기
기록동천대장정, 기동대의 만남이 60회로 끝이 났다. 이렇게 된 마당에 환갑잔치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이다.
2024년, 동천마을네트워크 10년이 되는 해였다. 10년을 위해 모두가 완성되길 바라는 숙제가 하나 있었다. “동천마을네트워크 10년의 기록” 이었다. 모두가 어딘가에서 열심히 각자의 일을 하며 보낸 10년의 시간을 담은 기록이었다. 각자의 기억에만 남아 있는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꺼내어 제 자리를 찾아주는 일이 필요했다. 또 다른 미래의 10년을 밝혀줄 작은 지침이 필요했다. 2023년 겨울, 그 일을 위해 기록동천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기록에 대한 개념도, 기록을 위한 실무적인 지식도 없이 마을 일이 늘 그렇듯 누군가는 해야 할 상황이었기에 그 누군가가 내가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겁 없이 그 대장정의 길에 올랐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다. 기록학 전문가와 디자인 전문가가 그 누군가가 되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힘을 얻었다.
60번을 만나면서 2023, 2024, 2025, 3년의 시간과 18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디렉토리북, 정보의 시각화, 아카이빙북, 마을기록소 등등 많은 꿈을 꾸기도 했다. 60번의 세 배 이상 작업시간을 함께 했고 주어진 숙제들을 해내기 위해 각자의 골방에서 인내심을 외치며 일종의 사투(사소한 투쟁?투정?)를 벌였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굽은 둘째 손가락에게 미안할 만큼 마우스를 클릭하며 일단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사소한 자료들이라도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이걸 할 수 있겠어? 이걸 굳이 해야 하나? 온갖 질문들과 투정들이 밀물처럼 찾아오면 썰물처럼 밀어내길 반복했다. 뼈 조각 하나를 온전하게 발굴하고자 미세한 붓으로 꼼꼼하게 흙을 털어내는 고고학자들의 인내심을 떠올리며 각자 맡은 일들을 완수했다.
기동대의 첫 목표는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모두 모아, 베고 자기 딱 좋은 그 옛날 전화번호부같은 『디렉토리북』을 발간하는 것이었다. 그 안에 사소하지만 존재했던 마을의 온갖 기록을 담아 활자의 세계에 담으려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표는 이른바 ‘쉽게 기록하기’를 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후의 기록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 혹은 조직이 필요했다.
결국 많은 우여곡절 끝에 베고 자기 딱 좋은 벽돌 책 대신 소박하고 작은 공간 하나, 『기록동천』을 마련했다. 다행이다. 마을의 온갖 기록을 활자로 담은 『디렉토리 북』 발간이라는 첫 번째 목표는 절반의 성공으로 마무리되었다. 바뀌는 세상에서 새롭게 나오는 Tool을 독학하며 비전문가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록동천』이라는 동천마을 아카이빙을 위한 공간을 직접 만들어 냈다. 절반의 성공이라지만 알차고 뿌듯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목표는 새로운 숙제로 남겨졌다.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바로 바로 알려주는 경보시스템처럼 마을의 일들이 시간 속에 사라지지 않고 자료가 되고 기록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때 마을네트워크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지난한 작업의 시간동안 마주했던 10년의 순간순간들은 과거가 아닌 현재였다. 사진 속에 담긴 10년 전 사람들의 젊은 얼굴은 열 살을 더 먹은 지금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고, 흐드러지게 핀 감자 꽃 덮인 10년 전 들판은 그 위에 지어진 아파트에서 새로 만나게 된 이웃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몰랐던 어느 지난 순간에 시작된 일들이 지금의 내가 누리는 행복과 즐거움의 기원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한때 무언가를 함께 했던 떠난 이들을 추억하게 했고, 앞으로 함께 할 새로운 이들과의 설레는 만남을 기대하게 했다. 기록의 과정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나게 했다. 그게 무엇이든 이어가게 해주었고 살아 숨 쉬게 해주었다.
기동대에 함께 했던 동병상련을 담은 우리들의 넋두리 속에 삶 그 자체였던 마을 일들이, 사건들이 기록으로 남아야 할 이유가 담겨있다.
“이 작업이 정말 끝이 날까 싶은 긴 여정이었는데 결국 마무리되네요. 기동대 1기로 자부심을 느낄 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재촉하지 않고 각자의 속도대로 곁을 지키며 함께한 우리도 더욱 성장했음을 느낍니다.”(나무늘보)
“기동대의 시간을 지나며 끝내 또렷이 남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입니다. 그물코처럼 얽히고 스며든 인연들이 마음 한 켠에 작은 결을 남겼습니다.”(울림)
기록은 혼자가 아닌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길을 여는 이정표이다. 기록의 이유이다. 기록의 이유를 지키며, 남겨진 숙제들이 또 누군가에 의해 무사히 완성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조금 더 씩씩해진 고기동, 동천동 주민으로서 그 곁을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후기 글 아무)
기동대2기 모집
기록은 유물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기록이 되기 위해서는 기록이 이어져야 하기에 앞으로 동천마을네트워크가 만들어갈 마을의 이야기, 역사를 계속 기록해갈 분들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회의록, 후기, 보고서, 홍보물, 사진, 동영상, 팟캐스트, 신문, 블로그 등에서 기록의 역할을 담당해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 분들이 만들어가는 산물을 2차 수집, 정리해가는 작업이 기동대(기록동천대장정)의 일입니다. 기동대 1기의 일을 발판으로 더 흥미롭고 생산적인 일들을 도모해갈 기동대 2기 분들을 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