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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 손 뻗으면 닿을 곳에

발행호
vol.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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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뭐든
작성일시
2026/04/12 19:33
최종 편집 일시
2026/04/13 01:23
작성자
파일과 미디어
단체_노란리본5.jpg.png

세월호 |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요즘 바쁘니?” “네 뭐 좀 바쁘죠.” “지금 어딘데?” “안산이요. 일이 있어서.” “너 또 세월호 뭔가 간 거지? 이제 남들 그만 도와주고 네 일을 하라니까.” “…네”
한창 공연 준비를 하면서, 누군가와 나눈 전화 내용이다. 너도 이제 너의 예술을 해야지, 너의 이야기를 해야지, 그런 말이었을 거다. 다른 사람들을 쫓아다니다가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내 일을 한다’라는 건 뭘까, 내가 하고 있는 이렇게 많은 일들은 내 일이 아닌 걸까?
지금까지 무언가를 해왔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하고 싶은 게 많았고, 실제로 많은 걸 해봤다. 그림, 사진, 디자인, 영상, 조형, 연극, 음악. 한 가지로 분야를 결정하기는 어려웠지만, 그 시간 동안에는 그냥 ‘할 말을 찾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언젠간 나의 할 말을 찾는다면 그때 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친구들의 연락으로 시작됐다. 시작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연극도 그중 하나였다. 우리는 각자의 역할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서로 도우며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갔다. 혼자서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작업들과는 달리, 연극은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같이 움직이고, 그 과정 자체가 결과와 상관없이 의미 있다고 느꼈다. 무대 위에서 무언가가 완성되는 순간보다는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과 계속해서 말을 주고받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함께 시간을 쌓아갔던 장면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일들이 만들어질 수 있구나. 4.16가족극단노란리본의 연습실에서의 시간도 그랬다. 하루 종일 가서 하는 일이라곤 이야기들을 듣고 울고 웃는 것뿐이었지만, 한 번도 내가 이곳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없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억들로 쌓이고 있었다. 연극을 만들어갔던 기억처럼.
노란리본의 다섯 번째 극 <연속, 극>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래도 손 뻗으면 닿을 곳에 나는 있을게요.”
기억이라는 것이 어떤 대단한 행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억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변화시키거나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함께 있는 동안 이미 서로의 시간을 조금씩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기억이 모여 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여 있기 때문에 또 다른 기억들이, 또 다른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서라기보다 서로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감각, 언제든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다는 감각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나는 그 연결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년에는 연극에서 나왔던 음악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우리가 쌓아온 시간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또 다른 기억이, 또 다른 이야기가 될까 궁금했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다시 모일 수 있는 이유를 만들고 싶다. 서로의 곁에 머무를 수 있는 순간들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다.
글 : 장희유 (이우학교 18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