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내만세운동’ 기념 강연 100도씨 | 독립운동과 여성 교육에 앞장선 김란사
3월 20일 금요일 저녁 7시.
둘째 아이를 데리고 동천동에 있는 수지농협 4층 대강당으로 갔다. 중2가 된 큰 아이는 먼저 와서 머내만세운동 ‘청소년 서포터즈’들 사이에 있었다. 그들 중 사회를 맡은 두 청소년이 강연대로 올라가 ‘강연 100도씨’ 의 문을 열었다. 머내만세운동 기념행사 중의 하나인 이 자리는 독립운동가를 조사하여 발표하는 대회다. 몇 명의 청소년은 영상 촬영을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세대와 단체들의 연대 속에서 자라온 머내마을(고기동과 동천동 일대)의 아이들이 어느새 동네의 작은 주역이 되어, 107년 전 독립운동가들의 얼을 잇는 이 특별한 행사를 이끌고 있으니 실로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대회는 참여 연령대가 더욱 다양해졌다. 초등 3팀, 청소년 3팀, 성인 2팀이 강연대에 섰다. 머내지역의 독립운동가 후손이 나와서 증조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함께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처음 알게 된 이종일, 남자연, 김란사 등에 대한 연설에 빨려 들어가기도 했다. 충실한 자료 수집과 기발한 퍼포먼스에 놀라고, 강연자들의 성찰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제 107주년 머내만세운동 기념, 강연 100도씨 5분 스피치 대회에 8팀의 참가자들이 무대에 섰다.
수지꿈 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아자아자를 응원하고 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앞장섰던 분들 덕분에 지금의 나라와 우리가 있다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감사와 함께 무거운 마음이 뒤따른다. ‘백여 년 전 그 날에 내가 있었다면?’. ‘두려움에 떨며 나서지 못하지는 않았을까’ 속으로 전전긍긍 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한 사람이 앞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녀의 삶을 따라가며 용기 내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녀의 용기 있는 삶을 아이들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무릅쓰고 기꺼이 무대 위로 올라선 그녀는 같은 학교 학부모였다. 나도 모르게 손을 쥐었다. 그녀처럼 눈앞에 있는 일에 용기를 내는 일, 그것이 백여 년 전 그날에 필요한 마음이 아닐까. 그녀는 ‘김란사’의 삶을 통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나는 강연 속의 교훈이 아이들에게 가닿기만을 바라던 객석에서 일어나, 백여 년 전 그날의 머내만세길 위에 함께 섰다. 그곳에서 들었던 등불 같은 이야기를 지면을 빌려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의 독립운동과 여성 교육의 선구자, 김란사]
저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얇은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김란사, 왕의 비밀 문서를 전하라” 김란사,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3.1 운동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입니다.
저는 그녀의 삶을 따라가며 용기 내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녀의 용기 있는 삶을 아이들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삶을 통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일본 유학과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 김란사는 그것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일제 시대 고통 받는 조선 사람들과 나라의 발전을 돕는 데 기여했습니다. 아이들이 언젠가 자신의 삶을 위한 길을 가겠지만, 때로는 김란사처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삶의 길도 생각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조선의 독립 운동과 여성 교육에 앞장섰고, 유관순의 스승이기도 했던 김란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배움에 대한 간절함, 꺼진 등불을 켜다
부유한 무역상의 첫째로 태어난 김란사는 어린 시절, 서당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어 아버지를 조르고 울었습니다. 공부하기 싫어서 우는 저희 아이들과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네요. 그녀의 청을 못 이긴 아버지는 집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그녀에게 자신의 일을 돕게 합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김란사처럼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녀는 경무청 일을 하던 하상기를 만나 늦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딸 원옥을 낳은 후, 김란사는 남편에게 어린 시절 여자라 서당에 다닐 수 없었던 서운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때, 남편 하상기는 여자도 배워야 한다며 이화 학당에 들어갈 것을 권유합니다. 갓난아이가 있는 아내를 학교로 보낼 정도면 그녀의 남편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자아자의 강연자료 (참고 문헌 : 김란사, 왕의 기밀문서를 전하라)
그렇게 이화학당장을 찾아간 김란사는 혼인한 사람은 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는 교칙 때문에 여러 번 거절을 당합니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학당장을 찾아간 김란사는 등불을 갑자기 꺼버리고는 이야기합니다.
“이 방 안이 어두운 것처럼 나의 인생도, 이 나라의 미래도 어둡습니다. 장차 나라를 이끌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려면 어머니가 먼저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도 미래가 있습니다. 꺼진 등에 불을 켜주세요.”
그녀의 용기는 결국 입학 허가를 받아냅니다. 부유한 집안의 딸이고, 높은 지위에 있는 남편이 있고, 어린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부족함 없는 여성이 편하게 지내기 좋은 조건인데 그렇게 공부가 하고 싶었을까요? 계속되는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의지와 용기, 나라의 미래를 위해 배우려는 열정은 엄마인 저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을 넘어 세계로, 그리고 나눔
그녀는 일 년 동안 이화 학당에서 공부한 뒤에도 남편과 함께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조선을 삼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그녀는 조선은 그동안 왕비가 죽임을 당하고 왕은 궁에서 떠나있었다는 걸 알고는 ‘외국 세력의 간섭을 물리치고 나라가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합니다. 그때 남편은 “조선이 강해지려면 여성도 배워야 하고 이 나라에는 그런 여성을 이끌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 사람이 당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김란사에게 더 넓은 세상, 미국에서 공부할 것을 권유합니다.
아자아자의 강연자료 (참고 문헌 : 김란사, 왕의 기밀문서를 전하라)
그렇게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미국 인문학사를 받고 돌아온 김란사는 조선 황실의 통역사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누린 것을 다른 여성들에게 나눌 때가 되었다’ 생각하고는 여학교를 세우는 일을 돕고 자신의 돈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이화학당 학장은 김란사에게 “조선 여성의 교육은 조선 사람이 해야 한다”며, 이화학당의 총교사와 사감 역할을 맡깁니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깨우치기 위한 절박함으로 아이들을 엄격하게 대한 김란사는 호랑이 사감으로 불리었습니다.
슬픔을 딛고 나라의 등불을 밝히다
그때 하나밖에 없는 딸 원옥도 이화 학당에서 전염병이 들어 사망합니다. 딸을 잃은 슬픔에도 ‘자식은 되살릴 수 없지만 잃어버린 나라는 찾을 수 있다’ 는 생각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합니다. 엄마인 저로서는 ‘나라가 언제 내 아이를 지켜줬나, 내 아이는 내가 지켜야지’ 생각했을 텐데 그녀의 애국심은 제가 헤아리기엔 너무 깊고 큰가 봅니다.
그리고 김란사는 “유관순, 우리나라는 불 꺼진 등과 같다. 네가 조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주지 않겠니?” 라는 말을 하며 유관순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종이 비밀 문서를 하나 건넵니다. 미국과 조선이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 당했을 때 서로 도와준다는 내용이 담긴 비밀 문서였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한 고종은 파리 강화 회의에 김란사를 보내 여러 나라 대표들 앞에서 대한제국의 독립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조선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이 일을 맡습니다.
갑작스러운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계획은 중단되었지만 2.8 독립선언문을 통해 비밀리에 다시 추진되고 그렇게 3.1 운동도 일어납니다.
김란사는 파리로 가기 전 베이징에서 비밀 결사대와 만나 이 일을 진행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베이징 동포가 마련한 저녁 식사 후 갑자기 사망하고, 독살의 의심은 있었으나 그렇게 그녀는 독립의 순간을 보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아자아자의 강연자료 (참고 문헌 : 김란사, 왕의 기밀문서를 전하라)
아이들에게 전하는 엄마의 마음
김란사는 계속되는 거절에도 이화 학당에 입학했고, 일본 유학을 하고 홀로 미국 유학길도 나섰습니다. 쉽지 않은 길을 갔음에도 그것이 나의 명예나 부를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조선을 발전시키고 독립 시키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꿈을 위한 선택을 하겠지요. 그 선택이 나의 이익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선택일 때도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 하는 공부가 너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목표가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거창하게 김란사처럼 나라를 구하라는 건 아니지만, 지금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주변 사람들도 생각하며 도움을 주는 삶도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 자리에 선 엄마의 용기를 기억하며, 김란사처럼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그녀의 삶이 아이들에게 작은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연문 : 아자아자(본명 최유리)
소개 글 : 일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