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탁네트워크의 공간, 공동체가 사는 공간
문탁네트워크가 이사를 했다! 무려 17년 만에 터전을 옮겼다는데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렇잖은가. 동네에 작은 분식집만 새로 열어도 주인은 어떤 사람인가, 장사는 잘되나 궁금한 것을. 마당발•신 ‘추적’ 코너에서 이런 호재를 놓칠 수는 없다. 문탁네트워크의 새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새로 이사한 문탁네트워크는 올마켓 건너편 상록플라자 6층에 있다. 사진은 문탁네트워크 입구와 집들이 날 고사상
[공간 - 모이는, 생활하는, 일을 벌이는]
문탁네트워크와 나이듦연구소가 공유하는 새 공간은 6층. 통창 너머로 보이는 탁 트인 풍경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크게 로비, 세미나와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 주방과 식당, 더치커피 제작소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7~8명 정도 되는 분들이 회의하거나 책을 읽거나 정리를 하거나 하며 그곳을 채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왜 이사를 했는지를 묻기에 앞서 문탁네트워크의 공간은 어떤 곳인지를 묻는 게 순서일 것 같았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로비와 세미나 공간, 연구실, 달밤커피 제작공간, 주방과 식당이다.
공부하는데 왜 이런 공간이 필요할까?
문탁네트워크의 공간은 함께 모여 공부하는 곳이다. (학창 시절 들었던 ‘공부는 혼자 하는 거야’라는 말이 스치고 지나간다. 아잇, 그 공부가 아니고..) 문탁네트워크에서 말하는 공부는 인문학이다. 그리고 문탁네트워크는 인문학 공동체다. 텍스트(책)를 기반으로 하지만 ‘책을 읽는다’고 하지 않고 ‘공부한다’고 한다. 뭐가 다른 걸까? 문탁네트워크를 이해할 때 필요한 키워드가 있다. 그리고 이 키워드는 공동체, 그리고 공간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세미나 - 방
인터뷰를 하던 날, 진달래와 봄날은 인터뷰 직후에 독일에 있는 누군가와 원격 세미나를 한다고 했다. 문탁네트워크 공부의 기본은 세미나다. 함께, 서로에게서 배우는 공부다. 당연히 모일 공간이 필요하다. 처음 시작은 어느 집 거실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속성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편하게 자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꿈꾸게 되면서 문탁네트워크의 공간이 탄생했다.
공간이 생기니 모임이 커지더라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어쩌다 보니 생각보다 넓은 공간을 얻은 거에요. 그런데 남는 공간을 활용하느라 강좌도 열고 이런 저런 일을 벌였더니 사람이 더 모였던 것 같아요.”
흔히 말하는 선순환, 한참 뻗어 나가는 황금기의 역동이 상상이 되는 대목이었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르는 동안 환경과 조건의 변화가 축적되었다. 코로나를 거치며 온라인 접속이 일상화되었고,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인원이 줄었다. 새로운 역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여 이사가 결정되었다. ‘전환’. 공간의 변화에는 문탁의 전환을 바라는 꿈이 담겨 있다.
밥 – 주방과 식당
밥이 중요한가? 매우 중요하다. 문탁네트워크에서 밥을 함께 먹고 준비하는 건 공동체에 얼마만큼 충실하냐는 주제와 직결된다.
“밥 당번이 절대 빵꾸가 나면 안돼요. 왜냐하면 그게 빵꾸가 났다는 거는 공동체에 대한 중요성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거고. 누가 못 올 수는 있죠. 그럼 다른 누군가가 메꿔줘야 되는데 그것도 안된다는 건 뭔가 우리가 문제가 있는 거다..”
젊은이들은 어떨지 궁금했다. 세대 간에 밥 정서가 달라 갈등이 불거진 적은 없는냐는 질문에 오히려 문탁네트워크의 젊은이들이 요리를 참 잘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쟤네(젊은이)들이 저보다 밥을 잘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어리지도 않아요. 30대고.(웃음) 제일 어린 세은이도 저보다 밥을 잘해요.”
문탁네트워크가 이사할 때 주방을 만드느냐 아니냐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파지사유에서 모두 다 같이 밥을 먹었는데 문탁네트워크에 주방을 만든다는 건 앞으로는 따로 밥을 먹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파지사유에서 걸어서 10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이지만, 환기 시설을 포함해 주방을 새로 만드는 데 꽤 큰 비용을 들여야 했지만, 다 감수하고 독립을 택했다. 아! 주방 분리가 곧 세대 분리로구나.
일 - 작업장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은 참 많은 일을 벌인다. 공부의 연장 선상에서, 취미가 확장되어, 때로는 연대하기 위해 이벤트와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이런 변화무쌍한 활동을 품는 공간이 작업장, 다목적 공간이다. 크게는 텍스트 기반 활동은 문탁네트워크, 손으로 복작이는 활동은 파지사유로 구분하고 있다.
새 문탁네트워크 공간에는 ‘달밤더치’ 작업장이 있다. 작정하고 만든 커피 작업장인 줄 알았는데 그보단 커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장비를 가져다 놓다 보니 자연스레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아마 언젠가 때가 되면 또 다른 관심사와 필요에 따라 공간의 모습이 달라지리라.
[공간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할까?]
짜임새 있고 아늑한 공간. 빈틈없이 돌아가는 이 곳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매달 운영비를 어떻게 충당하는지가 궁금했다.
“일단 기본 월세는 회원이 부담해요. 여기 운영을 책임지는 운영 회원이 있어서 그 분들이 돈을 갹출해서 내는데 형편에 따라서 좀 많이 내는 사람도 있고 덜 내는 사람도 있고.”
그럼 다른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하고 유지가 되는 걸까?
“돈이 왜 안들어와요? 세미나할 때 세미나 비용 내고. 또 강의 있으면 강의비 받고. 그러니까 1년을 다 통틀어서 살림을 사는 거에요. 그런데 그걸 하려면 운영위원들이 집세는 담당을 해야 되는 거죠.”
그렇게 살림을 살면서 다음 세대 청년들, 그리고 밖으로 연대하고자 하는 주체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 바로 기금이다.
“ 청년들이 알바를 하려면 문탁에서 공부하다 일하러 나가야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걸 못하잖아요. 그러면 알바를 안하고 그냥 문탁에서 돈을 조금 주고 활동하게 하면 어떻겠나? 그러다 청년들을 위해서 길위기금을 만들었어요. 문탁네트워크가 아니라 다른 쪽에서 기금을 도와주시는 분들도 꽤 많아요.”
“그리고 동네 외국인 노동자, 전국 장애인 연합, 세월호, 이태원 등 사회 곳곳에 연대해야 될 사람들, 단체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또 연대기금을 만들었어요.”
정기적으로 회의를 통해 들어온 돈과 나갈 돈을 함께 살펴보고 논의하며 말 그대로 살림을 함께 꾸려나간다. 운영자와 사용자가 따로 없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공간을 꾸리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조언]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공간을 일구고 발전시켜온 선배로서, 저마다의 고유한 공간을 꿈꾸는 주체들에게 전하고 싶은 운영의 노하우, 또는 조언이 있는지 물었다.
자율, 그런데 스스로 느끼는 압박감을 곁들인
문탁네트워크의 독특한 운영 방식이 있다. 자율성과 눈치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밥 당번을 정하는 것도,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 하는 것도 누가 시키거나 감시하지 않는다. 자율적으로 손을 들어 하긴 하는데 나도 모르게 이 정도는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있다는 것이다. 참 자연스러우면서도 미묘하고 신비한 균형이 아닐 수 없다.
“(밥 당번을 정할 때) 달력에 자기가 이름을 써놓거든요. 그런 분위기에 젖어들게 되고 그러면 어느새 이름을 쓰는 자기를 발견하는 거죠.”
“인문학 공동체는 인문학을 가지고 공동체적인 정신, 감각 이런 것들이 생겨나는 거기 때문에 무슨 권위나 이런 걸로 되는건 아니에요. 여기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자기의 의지 이런 것들이 있고.”
멀리 돌아가도 함께 가는 길을 간다
또 하나의 문탁네트워크 운영 노하우는 끝장 토론이다.
“만장일치는 아니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누군가는 거기에 동화되고 이런 방식이지 한번도 다수결을 해 본 적은 없어요.
결국에는 모두가 합의에 이르는 방식이 지난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수한다. 그래서 공동체의 규모가 너무 커지면 운영이 힘들다. 그럴 땐 차라리 공동체를 나눈다. 파지사유와 문탁네트워크를 분리한 것처럼.
책, 공동체를 이어주는 근간
마지막으로 받은 조언은 ‘함께 책을 읽어라’ 였다. 책이 공동체를 이어주는 근간이라는 것이다. (문탁네트워크스러운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한편 생각해보면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공동체 운영 규정보다 꾸준히 함께 읽는 책이 공동체 문화를 공고하게 다질 수 있는 훨씬 더 강력한 방법인 것 같다.
“문탁네트워크에 있는 사람들이 꼭 그래요. 한번은 우리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도움을 주자고 했어요. 그러면 관련된 책을 한번 볼까? 하고 책을 먼저 읽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거보다 더 강력한 방법이 있을까? 없어요. 무언가 더 이야기를 끌어가거나 생각을 심화하거나 할 수 있는 방법은 책밖에 없어요.
[살짝 엿본 문탁네트워크의 공간]
잠깐이었지만 문탁네트워크 공간의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느낌은 같은 반 친구나 동료의 느낌에 가까웠던 것 같다. 오랜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여 서로 깊이 이해하는 사이에서 우러나오는 느낌. 정말로 오래된 사이여서, 인문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아니면 또 다른 요인 때문이었나?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여간 자연스러운 유대감이 느껴졌고, 문득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옛 친구들과 동아리방이 떠올랐다. 약간의 그리움도.
“우리끼리 가끔 하는 얘기가, 나이 먹고 이런 친구들을 만나는 공간을 이제 만나기 힘들다. 여기 있으면 매일 코미디 보는 것 같거든요. 사람들이 엄숙하게 공부만 할 것 같지만 되게 재밌어요. 맨날 그 사람들이 다 뻘짓을 하고 살기 때문에.. 매일 같이 이렇게 웃을 수 있는데가 여기이고, 우정이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같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걸 같이 유지해야 되니까 가야 하는 부분이 있는 거죠.
새 터전에서 전환의 바람이 불어오기 기대하며
작년 12월 30일에 이사한 후로 3개월여가 지났다. 그동안 체감하는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아담해진 공간 덕분에 서로 조금 더 돈독해진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전환의 바람을 일으킬 에너지가 새로운 공간에 쌓이고 자라나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친절히 인터뷰에 응해 주셨던 봄날과 진달래
공간과 사람들 : 문탁네트워크
인터뷰 : 일렁, 보노보노, 나디
소개 글 : 나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