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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마음과 마음을 잇다 : 골목잡지 '사이다'와 ㈜더페이퍼 최서영 대표의 기록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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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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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시
2026/05/11 08:32
최종 편집 일시
2026/05/1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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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_사이다.png

기록으로 마음과 마음을 잇다

골목잡지 '사이다'와 ㈜더페이퍼 최서영 대표의 기록 여정 _ 인터뷰
수원 골목 잡지 ‘사이다’ 들어보셨나요?
흔히 보는 골목길 풍경에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보통 사람들 이야기가 참 맛깔나고 재미져서 입소문을 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잡지이지요. ‘사이다’는 2012년에 창간되어 16호까지 발간되었고, 지금은 잠깐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중인데요, 이 손에 꼽히는 유명한 마을 잡지의 제작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마당발.신이 사이다를 발간하는 사회적기업 '(주)더페이퍼'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무실 이전으로 정신없는 와중이어서 약속을 잡기가 어려웠지만 고맙게도 시간을 내어주셔서 최서영 대표님을 만나 뵙고 올 수 있었습니다.
1. ‘사이다'라는 그릇에 담은 지역에 대한 애정
‘사이다’의 이미지 덕분이었을까요? 유난히 따뜻하고 편하게 느껴졌던 최서영 대표님이 들려주신 사이다 창간기에는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습니다. 출판사 대표라는 후광 이전에 동네 주민으로, 워킹맘으로, 시민 활동가로서 감내해야 했던 상황과 쉽지 않았을 결정의 순간들이었지요. 갑자기 연고가 없는 수원으로 이주를 한 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교류하며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던 일부터, 시민 활동과 신문사 취직을 거쳐 기획사를 창업하기에 이르게 된 일까지. 말 그대로 쉼 없이 달려 온 세월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획사 창업은 그녀가 워킹맘으로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위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사무실을 학교와 집 중간쯤에 얻어 양쪽을 모두 챙길 수 있었으니까요. (워킹맘을 위한 유용한 팁!)
사이다와 (주)더페이퍼의 최서영 대표 / 새 사무실(수원시 인계동)_사무실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각종 수상 상패와 표창장들
“남편이 서울에서 수원으로 발령이 나서 이주했어요. 동화 읽는 어른이라고.. 해님 달님이라고 이름을 짓고 동화를 공부하는 엄마들 모임을 하게 돼요. … 거기서 또 소식지를 만들어요. 행사도 되게 잘했어요. 정승각 선생님, 이오덕 선생님 다 오셔 가지고 전시회도 하고. 그 당시는 그런 시절이었어요. 낭만의 시절이었잖아요. 그리고 도서관도 운영해요. 동화 읽는 어른 모임 안에는 책사랑방이라는 운동이 들어 있어요.”
“하다가 어느 순간에 신문사(내일 신문)에 창업 취직을 하게 되죠. 그런데 남편이 울산으로 발령이 나고 저는 (아이들 학교 때문에) 여기 남아서 자그마한 기획사를 차리면서 페이퍼가 시작됩니다. … 학교와 집 사이에 사무실이 있어, 그러니까 이거는 그냥 방법이에요. 애들이 집에 가다가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대응이 되잖아요. 1학년 때는 담임 선생님이 횡단보도까지 이렇게 데려다주시잖아요. 그러다가 이제 중간에 들어 오셔 가지고 애가 받아쓰기 20점 맞았는데 어머니 공부를 안 시키시나요? (웃음)”
그러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육아에서 자유로워지면서 골목잡지 ‘사이다’ 탄생의 꿈이 힘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역에 뿌리내리며 지역 문화에 대해 고민을 한 끝에 사이다 창간을 결심한 것이지요. 그런데 마냥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이 있었거든요. 이를 타개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남편의 지지였습니다. (최서영 대표님은 굳이 아니라고 부인하셨지만…. 멋진 남편님과 결혼 잘하신 것, 맞습니다!)
”아이가 이제 대학에 가고 나니까 제가 집에다 선포하게 되죠.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다. 남편한테 말했죠. 내가 창간을 하고 싶은데 돈을 많이 쏟아부어야 할 수도 있어.. 라고 했을 때 남편이 반대도 많이 했지만, 그 꼴을 봤잖아요. 제가 그동안에 일해 온 모습을 봤으니까 한 1억 정도는 써도 되지 않겠냐고....”
“사이다라는 잡지는 결정체거든요.” 최서영 대표
최서영 대표님은 기존 기획사를 사이다를 발간하기 위한 체제로 바꾸며 ㈜더페이퍼로 재탄생시킵니다. 그녀에게 사이다는 일부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더페이퍼 직원들은 입사 전에 ‘사이다는 일이 아니다’라는 말을 먼저 듣는다고 할 정도니까요. 일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마치 존재 이유 같은 것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최서영 대표님의 지역과 사람(마음)에 대한 깊은 애정 덕분에 지역의 결정체로서의 이야기를 담는 ‘사이다’라는 그릇이 탄생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잡지가 안 팔리는 시대라며, 잡지 만들면 전 재산을 다 털어먹을 수도 있다고 말렸어요. 하지만 저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세상에 없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지금도 영리 활동으로 번 돈을 사이다에 다 쏟아붓고 있지만,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2012년 탄생한 이래, ‘사이다’는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최고의 지역 잡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 년에 4번, 사이다 인쇄본 5천 부가 사무실에 도착할 때쯤이면 동네 주민분들이 하나둘 오셔서 책 나르기를 도와주신 덕분에 한시름 덜기도 했다고 할 정도니까요. ‘공들여 만들어 누구든 보고 싶은 사람은 다 볼 수 있게 한다’라는 최서영 대표님의 생각을 바탕으로 쑥쑥 자란 사이다는 지금도 생명력을 뽐내며 우리 옆에 있습니다.
“원고 하나하나부터 이야기를 만들어서 활자화한다는 거는 책임이 많이 따르는 일이고 정기적으로 나가는 일들은 약속을 엄청나게 지켜줘야 해요.”
얘 자체가 생명력을 가져야 해요. 얘는 이미 세상에 나와서 이름을 가지게 됐어요. 사이다는 다 알아요. 생각보다 멀리 있는 사람들도 알아요. 사이다를 찾아서 와요. 이제 동네에서 이 책을 봤어. 그래서 너무 재미있더라. 그래서 그걸 받으러 오세요. 그래서 확실하게 자기 생명력을 갖게 되면 얘는 자기가 굴러갑니다.
2. 사라지는 마을, 그 안의 정신을 기록하는 이유와 책임감
“마을은 사라지지만, 그 마음을 남기고 갑니다.”
사이다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잠시 휴식기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최서영 대표님과 더페이퍼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사라져가는 지역, 마을, 사람과 정신을 기록해 오고 있습니다. 기록은 떠나는 이들에게는 삶의 궤적을 확인시켜 주는 치유의 과정이며, 후대에는 잊고 살았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신도시 80% 정도가 경기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아시나요? 마을 분들이 다 이 책을 들고 가셔서 하룻밤에 다 읽으세요. 그러고는 우시고…. 마을이 헐릴 때 물건이나 공간보다도 사람의 정신이, 마음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시골 마을 할머님들 구술사 하면서 많이 느껴요. 마음들이 달라. 지금 마음들하고요. 이제 아들이 50 넘어서 결혼도 실패하고 사회생활 실패해 갖고 돌아왔어. 늙으신 노모한테. 그러면 안 좋잖아요. 밖에서 얘기 듣기가. 그런데 그 할머니는 그렇게 얘기하세요. 나는 아들이 있어서 남들 대충 해 먹을 때 반찬도 해 갖고 밥 먹는다고. 얼마나 좋냐고….”
그렇기 때문에 최서영 대표님은 지역 기록이 전문가의 영역이 아닌 시민들의 '공동 우물터'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물터에서 건진 이야기의 맛을 잘 살릴 수 있는 ‘다정한 글쓰기’, 곧 ‘사이다적 글쓰기’를 강조합니다.
‘다정한 글쓰기’, 곧 ‘사이다적 글쓰기’로 이야기 맛을 살린 도서들 /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 독자상장
“우물터에 와서 서로 신세 한탄하며 오가는 것들이 기록 활동에서 생겨요. 어르신들에게는 그의 인생을 들어주는 거잖아요. 이야기를 통해서 그분의 인생을 한 번 더 보듬어 주는 것, 이게 복지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이다적 글쓰기'를 강조해요. 맞춤법이 좀 틀리고 서툴러도 괜찮아요.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그대로 담긴 다정한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 깊게 파고들거든요. 기록은 특별한 게 아니라, 남의 인생을 통해 나를 위로하고 서로 교감하는 과정입니다."
지역 기록, 시민 기록 활동의 선구자로서 걸어온 대표님의 과거를 되짚어 보면서 사이사이 묻어나오는 그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라져가는 정신을 남겨 후대에 전하고 싶은 마음, 구술 기록을 남기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받는 위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독자와의 약속을 지켜가며 최고의 결정체를 만들어 낸다는 책임감 등을 말이지요. 그럼,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는 어디로 향할까요?
3. ‘골목을 열다': 사이다의 미래 비전과 지속 가능한 기록
‘수원의 골목 이야기만 담기에는 너무나 많은 골목이 있고, 모든 골목은 연결되어 있다.’ 사이다의 골목을 열기로 한 이유입니다. 알고 보면 지역과 지역 간의 경계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선일 뿐이라는 깨달음임과 동시에 지역의 이야기에 대한 수요가 분명 존재한다는 발견이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골목잡지 사이다거든요. 그런데 용인에서 오신 분들은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용인 없는 수원이 있냐…. 이런 거죠.
(주)더페이퍼가 발간한 지역 아카이브 도서들
“지역 출판사들이 모여 지역 출판 연대를 만들어요. 그리고 서울국제도서전에 저희 연대(50여 개 출판사)가 나가요. 그때 보니까 서울에 서울 사람만 사는 게 아니더라고요. 온갖 지역 사람들이 찾아오는 거야. 부스에 와서 어디 어디 책 있어요?
한편 지속 가능성을 위해 유료 전환 결정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이다의 골목을 열기로 마음먹고 준비를 한창 진행하던 중,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이에 적지 않은 준비 작업을 뒤로 하고 발간을 미루어야 했지요. 하지만 멈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실험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니 영상 미디어로도 이 이야기들을 담아내려 합니다. 그게 엄청나게 준비해서 2주에 한 번씩은 뭔가를 올려야 된다고….(웃음)”
한편, 그간의 기록 사례들을 학술적으로 정리하여 기록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자 한다는 계획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숙제이기도 하다면서 말이지요.
"마지막 제 과제는 공부를 하는 거예요. 그동안 제가 해 온 이 무모한 기록 작업이 어떤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지 학술적으로 정리해서 남기고 싶어요. 이 소중한 기록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드는 것이 제 마지막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기록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 기록의 가치를 알리며 후대 기록가들을 위한 길을 닦고 싶다는 최서영 대표님. 기록동천 작업에 참여하며 기록에 살짝 발끝만 담가 본 저로서는 감탄에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사라지는 무언가(마을, 사람, 정신)를 향한 애틋함과 기록 작업의 막중한 책임감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저를 돌아보게 되었지요.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역 기록/출판계의 기둥과도 같은 최서영 대표님과의 가슴 벅찼던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되었지만, 전국구로 거듭날 새로운 사이다를 통해 그녀의 마음과 다시금 만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_나디
[에필로그 1_연연]
마을 활동을 시작한 이후, 10년 전쯤 골목잡지 ‘사이다’를 처음 접했던 때부터 오랫동안 궁금했었다. 도대체 누가, 어떤 사람들이 모여 이렇게 남다른 잡지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일단 제목부터 시작해서 디자인, 실리는 내용들이 정성스레 차려진, 정갈하고 따스한 밥상 같았다. 아무 연고도 없이 드린 인터뷰 요청에 응해 주신 ‘사이다’의 산모인 최서영 대표님을 만나고 나서 ‘소중함’이란 단어가 가장 크게 마음에 남았다. 목적의 소중함, 공들임의 소중함, 견뎌냄의 소중함, 소소한 것들의 소중함, 놓치는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의 소중함, 교감의 소중함, 정겨움의 소중함,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의 소중함, 사람의 소중함, 기록의 소중함, 책의 소중함 등등.
정성을 다하다 보니 ‘사이다’가 스스로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는 말처럼 진솔하고 감동적인 고백은 듣기만으로도 벅찼다. 묵묵한 실천으로 생태계를 복원한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의 소설 주인공)을 떠올리며 이 분의 따뜻한 의지, 사이다적 글쓰기로 골목의 얼굴을 그려낸 ‘사이다’, 소탈하게 들려주신 최 대표님의 이야기와 기꺼이 내어주신 귀한 시간을 향한 고마움이 묵직, 두툼해졌다.
더페이퍼 싸이트 화면 캡쳐 사진
[에필로그 2_울림]
“기억을 기록한다”는 말이 유독 길게 여운을 남겼다. 대표님이 들려주신 밤길의 추억—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걷던 길을 희미하게 비추던 눈썹달, 퇴근길 행궁동 하늘에 걸린 그 달을 더 오래 보려 가족이 함께 서쪽으로 쫓아갔지만 너무 빨리 져버려 아쉬워했던 그 순간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또한 밥 지을 무렵 뜨는 달은 금세 진다는 것을 삶의 감각으로 알고 계신 어르신들의 지혜 역시 기록의 소중한 조각이었다.
결국 기록이란, 우리가 잊고 지낸 관계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이어져 있었는지, 이웃과 이웃이 어떤 마음으로 서로에게 기대어 살았는지, 그리고 사람과 공간이 어떻게 서로의 시간을 품어왔는지를 다시 불러오는 과정 말이다. 달과 별은 여전히 하늘에 있지만, 바쁜 현대의 삶 속에서 우리는 자주 그것들을 잊고 산다. 기록은 그렇게 무뎌진 감각과 끊어진 관계를 다시 일깨우는 작업이었다.
인터뷰 : 나디, 연연, 나무늘보, 울림
소개글 : 나디 / 에필로그 : 연연, 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