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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

발행호
vol.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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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뭐든
작성일시
2026/05/12 16:34
최종 편집 일시
2026/05/14 01:44
작성자
파일과 미디어
신제은_꼴라주 163226.png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

I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의 마을 돌보기 I
“온 우주가 날 돕고 있어!” 그 말을 참 많이 했습니다. 외동딸이라 서러움 없이 자란 걸까? 아니면 우리 집에 돈이 많았던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그럴 리 없습니다. 전 별 게 아닌 일에도 아주 서러워하고 불안해했습니다. 저는 둔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예민하고 여려서, 안전하지 않은 공간을 귀신같이 감각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이 벅찬 마음을 갖고 큰 걸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춤놀이터’ 활동 중
공동육아로 발을 들이기 전, 저는 고집이 센 것에 반해 아주아주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였습니다. 아직도 유치원에 들어오면 어떤 색 옷걸이에 옷을 걸어야 하며, 물컵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께 밉보이고 싶지 않아 애써 기억하려고 노력했나 봅니다. 매번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아 울며 업혀 갔습니다. 그러고는 구석에 들어가 얌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작은나무숲 나들이, 고기교회 나무위에서
작은나무숲 어린이집에 간 저는 여전히 눈물이 많았고, 어둡고 좁은 곳을 찾았지만, 그곳에서 저는 햇살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규원이 오빠와 윤이는 그림자를 집요하게 찾아내 절 웃겨 주었고, 보리수와 옹달샘, 도레미는 제게 곤충과 꽃, 나무, 열매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동생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며 그림책을 읽어주는 7살이 되었고, 아주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작은나무숲에서 수지꿈학교까지, 어떤 어른도 제 엉뚱한 생각들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지금 이우학교의 제 친구들은 소심하고 쭈뼛거리는 저를 상상하지 못합니다. 온 우주의 도움을 받는 듯이, 손대는 모든 곳에 열정의 태가 보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저의 이야기를 쉬이 꺼내고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대안학교 ‘수지꿈학교’ 가족들 / 마을 가족 합창단 ‘밥챙알챙’ 공연 / 마을 풍물패 ‘소풍’ / 마을행사 ‘머내만세운동’
수지꿈학교에 오자, 저는 마을과 더 가까이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의지할 구석이 넘쳐나도록 많아졌습니다. 빙그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려주며 끝내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 되었고, 혜경쌤을 만나고서는 함께하는 음악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배우며 어떤 악기든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바탕이 생겼습니다. 윗집 언니의 소개로 정옥쌤을 만나, 도자기 굽는 법과 글 짓는 법을 배웠습니다. 덕분에 저는 부끄러운 속얘기도 글로 잘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을에 의해 자라난다는 것은, 기꺼이 사랑을 주는 어른들을 아주 많이 만난다는 뜻 같습니다. 전 넓은 한국의 땅을 구석구석 밟아보며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마을의 손길에 커다란 치유를 받은 셈입니다.
I 새로운 세대가 바라보는 마을 I
모두가 그런 식으로 기회와 긍정 속에 자라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지꿈학교에서 나와 보니, 친구들과 선생님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 놀랐습니다. 누구나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이, ‘틀리는 것’을 과하게 무서워했습니다. 존경하는 어른도 특별히 없었고, 공동체가 왜 있어야 하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마을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습니다. 마을 어른들을 잘 만나지 않아서입니다. 마땅히 의지해 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구태여 만나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야는 그렇게 넓은 듯 좁아져 있는 상황입니다. 청소년들은 자꾸만 밖으로 파고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넓은 세상으로 뻗어가야만 한다는 강박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우학교 속에서도 이우락쿱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차이가 도드라집니다.
청년들이 청소년을 돌보는 마을교육공동체 ‘공공’ 활동 사진
마을활동에 어려서부터 참여하지 못한 친구들은, 경험을 찾아나가고 어른들을 만나는 과제가 주어져도 마을 밖을 찾게 됩니다. 그런 친구들조차 마을을 찾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공간이 필요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 마을에 있는 모임 장소는 학생들과 잘 소통이 되고 있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이트를 이용해 장소 대여로 수익을 내는 사업자들과 마을의 공유 공간은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요즘 학생들이 마을 공간을 이용하는 이유가 오직 저렴한 가격에 갇히고 있습니다. 지금도 학생들이 이용하기 전 꽤 고민을 해야 하는 가격에서 머무르고 있기에 더 걱정이 됩니다. 마을의 공간이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장소로서 존재하기 위해, 공간을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나 행사를 이어가 보면 어떨까 고민합니다.
I 예술로 이어지는 마을 I
저는 마을과 예술로 닿아왔습니다. 실은, 무엇보다 공동체에 필수적인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어떤 말도 없이 우리를 연결해주고 붙들어줍니다. 친구들에게도 그런 연결 고리를 주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아주 좋아하던 저는 아직도 예술을 합니다. 제 외로움은 신경도 쓰이지 않을 정도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고, 평화와 기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기획한 ‘시간의 선율’ 공연_우주소년에서
제게는 꿈꾸는 세상으로 한없이 타오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눈길 가는 모든 일에 다가갈 수는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그러기에 저는 지침을 이길 정도로 강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의 한도는 어디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지침이 두려움에도 사랑하기를 다짐합니다. 그게 진정으로 세상과 닿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말을 전하기 위한 춤을 만들 때마다, 저는 큼직한 생각의 성장을 느낍니다. 혼자서 안무를 만들었지만, 공연을 함께하면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연결망이 생긴 기분이 듭니다. 공연 후 사람들의 감상을 들을 때마다, 저의 움직임이 누군가에게 다가가 울림이 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게 예술은 공동체가 있기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얻었습니다. 함께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예술을 경험했고, 그 안에 내가 한 일원으로 존재하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21기 김규민 선배의 공연 ‘our language’ 중 신제은 독무 [Vanilla] / 딜로스 단독콘서트 중 신제은 창작무 [Hypotheticals]
나는 안전한 곳에서 자라나, 안전한 사람들 속에서 안전하게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차가운 바깥세상을 그저 혐오하다 결국 궁금해하게 되었고, 바깥세상에 드디어 발을 들이고 나니 알고 있던 사회의 단점들이 극대화되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바깥세상 전부를 혐오하던 나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더 가까이 알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과 나 또한 사회의 일부임을 알고 나니 사회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해 애쓰게 되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 역시 정말 편안하고 안전하며, 나를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보호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에겐 참 다행히도 삶을 풍족하게 누릴 만한 음식과 건강, 이부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당신을 보면 당신의 세계가 보이고, 나는 당신의 세계를 만나는 데에 너무 지쳤던 것이다. 당신은 나에게 외면하고 싶은 존재임과 동시에 사랑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지침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되새겨야 하고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함께 할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절대로 당신을 동정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같은 원 속에 있으니까. _이우고등학교 21기 김규민선배의 공연 ‘our language’ 중에서
I 사회적 예술을 꿈꾸다 I
어린 시절, 마을 합창단 ‘밥챙알챙’의 세월호 공연 / 팽목항 앞
저는 사회적인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저 신남 너머의 가치를 가진 춤을 추고 싶습니다. 저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춤, 독립운동 국가유공자분들을 기억하는 춤, 외모가 권력이 되고 자본으로 소비되는 사회를 비판하는 춤, 소수자들을 애써서라도 품어야 한다는 말을 담은 춤, 알면 사랑할 수밖에 없기에 우리 모두 서로에게 물들어야 한다는 애원의 춤을 만들었습니다. 저를 감싸주고 있는 공동체들이 느껴집니다. 저는 보호 받고 있고, 보호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항상 따뜻했습니다. 이 따뜻함을 더 많은 사람이 안다면 세상은 지금처럼 서로 등 돌리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이기심은 결국 외로움에서 오니까요. 그들을 더 이상 외롭지 않게 하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외롭지 않은 아이들을 키우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그걸 예술을 통해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게 제가 바라는 어른인 것 같습니다. 더 자유롭고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내릴지도 모르는 평가와 핍박을 상상하지 않고 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저의 예술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라는 감각이 듭니다. 제가 이러나저러나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장점은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면모를 잘 발견해 주고, 잘 말하는 것입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잘 대하고 사랑의 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빛을 나눌 수 있도록 먼저 마을을 밝히는 어른으로 커보겠습니다.
글 : 신제은 (이우고등학교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