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스케치] 동우리 마을에 흐르는 따듯한 춤선, ‘다함께 차차차’가 머문 자리
바람이 온화하게 뺨을 스치는 봄날이 오면, 우리 마음속에도 어떤 기대감이 피어나곤 합니다. 지난 4월 18일 토요일,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느티나무도서관 아랫마당은 그 어느 때보다 싱그럽고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찼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발달장애아동 가족 자조 모임인 ‘사이에부는바람’(이하 사이바람)이 준비한 마을 행사, ‘차이를 채우는 춤잔치 – 다함께 차차차’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말이나 글이라는 정형화된 언어를 넘어, 맞잡은 손과 서로를 향해 뻗은 몸짓으로 서로를 느끼고 교감했던 그날의 풍경을 전합니다.
1. 환대와 연결의 문을 열며 : “여기가 바로 소문의 낙원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진행 순서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느끼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함께하는 이 시간과 공간이 서로의 선한 기운이 오고 가는 ‘소문의 낙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이바람의 대표 ‘멍게’의 다정한 환영 인사와 함께 축제의 막이 올랐습니다. 작년 장애인의 날에 성미산 마을의 발달장애 청년 훌라춤 동아리 ‘사부작’을 초대해 신나게 춤추었던 기억을 이어, 올해는 온 마을 이웃을 초청해 더 큰 춤판을 벌인 것입니다. 아이들이 조금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소리를 내도 그 자체로 환대 받는 공간. 따뜻한 수프와 고기로 나그네를 위로하며 아픔과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동화 속 낙원 같은 풍경이 느티나무도서관 지하 1층에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송우련님의 바이올린 연주와 김다빈님의 첼로 연주 / 중창단 ‘힘내라 마음아’의 공연
첫 무대는 서울과 안양 지역에서 먼 걸음을 해 준 발달장애 청년 음악가들이 열어주었습니다. 2021년부터 인식 개선 강사로 활발히 활동 중인 송우련 님의 바이올린과 김다빈 님의 첼로 연주가 시작되자, 소란스럽던 마당이 일순간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로 물들었습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중창단 ‘힘내라 마음아’는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개똥벌레>, <모두 다 꽃이야>를 불렀습니다. 온몸을 들썩이며 가슴으로 토해내는 노랫소리에 관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뼉을 치며 목소리를 보탰습니다. 가사 그대로 우리는 저마다 모양과 색깔은 달라도 모두 귀한 ‘꽃’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2. 온몸으로 깨어나는 마술 : 현화 샘과 함께 춤을!
감동적인 공연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본격적인 움직임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순서를 이끈 김현화 선생님은 영국과 뉴욕에서 조소와 오이리트미(Eurythmy, 발도르프 예술 움직임)를 전공한 전문가이자, 멍게 대표와 20대 시절을 함께 보낸 30년 지기 동네 친구이기도 합니다. 청춘의 길목에서 서로를 응원하던 이들이 중년이 되어 다시 한 마을에서 만나 이토록 멋진 판을 짜게 되었으니, 마을이 주는 인연의 깊이에 모두가 새삼 감탄했습니다.
현화 샘의 나직하면서도 힘 있는 몸짓을 따라, 광장에 모인 이들이 하나둘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쭈뼛거리던 손을 뻗어 옆 사람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맞추어 커다란 원을 그렸습니다.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거창한 춤 기술이 없어도,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공동체의 몸놀이가 근사한 춤으로 변하는 마술이 눈앞에서 펼쳐졌습니다.
춤판의 흥겨움은 수지꿈학교 중학교 3학년 박하온, 김조희 학생의 가야금 2중주 <밤의 소리>로 이어졌고, 이우학교 안팎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청소년 모임 <보리울의 춤판>이 가세하면서 정점에 달했습니다. 청소년들이 전해주는 싱그러운 신명에 이끌려 너도나도 무대 중심으로 뛰어들었고, 느티나무도서관 마당은 거대한 댄스파티 장으로 변신했습니다.
김현화님과 함께 하는 몸놀이
박하온, 김조희 학생의 가야금 연주 / 춤추는 청소년, ‘보리울의 춤판’
3. 우리 사이에 바람이 불어오면 : 다정한 질문과 풍성한 나눔
잔치에는 노래와 음식이 빠질 수 없는 법입니다. 이날 축제에서는 사이바람만을 위해 윤지선 님이 선물해 준 귀한 주제가 <우리 사이에 바람이 불어오면>이 처음으로 함께 불렸습니다.
“우리 사이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면 / 나는 너의 손 꼭 잡고 천천히 걷는다 / 서로를 그리며 함께 자라요 / 맞잡은 두 손은 작은 울타리……”
따뜻한 노랫말과 고운 선율을 입 맞추어 부르는 동안, 참가자들의 눈시울이 촉촉해지기도 했습니다.
다과 / ‘질문수집가’ 대화 시간
숨을 고른 후에는 5개의 그룹으로 둥글게 둘러앉아 ‘질문수집가’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네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던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필두로, 머뭇거림을 깨고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쉽고 다정한 질문들을 함께 모았습니다. 처음의 어색함은 이내 사라지고, 가슴속 깊은 이야기와 웃음이 마당 곳곳에서 피어올랐습니다.
여기에 수지꿈학교 학부모님들이 아침 일찍부터 모여 고소하게 부쳐온 전 냄새가 더해지니, 오감이 모두 행복한 진짜 ‘마을 잔치’가 완성되었습니다.
4. 축제를 마치며: 스쳐 가는 바람이 아닌, 머무는 바람으로
행사가 끝난 후, 축제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수지장애인복지관 식구들은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지 않고 마음을 모아 하나 되는 시간이었다”며 감동을 전했고, 행사 후 복지관에서 보내온 영상 속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말 그대로 ‘행복’이 가득 묻어 있었습니다. 멍게 대표는 “우리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무대 중심에 우뚝 서진 못했더라도, 사이바람이 매개가 되어 온 마을 이웃이 손을 잡고 어울릴 수 있어 코끝이 찡할 만큼 행복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공간을 내어준 느티나무도서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며 준비한 ‘사이에부는바람’ 가족들, 그리고 축제를 잔치답게 만들어 준 모든 이웃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습니다.
‘사이에부는바람’은 발달장애 아동과 가족이 예술과 마을 안에서 소외되지 않고, 당당한 삶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환대의 장을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이날 우리가 맞잡은 손과 서로를 향해 웃어주던 미소는 일회성 행사가 아닌,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존중과 공존의 지역사회를 보여주는 예고편이었습니다.
우리 사이에 불어온 이 따뜻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이 마을에 오래도록 머물며 서로를 기대어 살게 하는 삶의 기운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년 봄, 또다시 열릴 춤판에서는 더 많은 이웃과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다함께 손을 잡고 차차차!
글 : 멍게
고기동에 들어온지 14년차를 맞이했습니다. 그때 땅을 사진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하며 2년마다 고기동의 이곳 저곳으로 옮겨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선재'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발달장애가족의 자조모임 ‘사이에부는바람’의 대표일꾼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수지꿈학교 빙그레와 같은 집에 살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