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아카이브
‘죽음’ 곁에서 _ 편집자의 에세이
어쩌다 보니, 십수 년 평범한 주부로 살아온 내가 마을의 이야기를 모아서 사람들에게 실어 나르는 마을뉴스레터를 만들고 있다. 편집자이자 필진인 나는 마감을 앞두고 집중력 노동에 빠져 있다. 일머리와 일 근육을 잃은 지 오래, 글을 잘 쓰는 것은 둘째 치고 오랫동안 집중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잠시 머리를 식힐 거리가 절실한데, 얼마 전 단톡방에 올라왔던 글 하나가 떠오른다. 자칭 수집광이라는 기록 전문가 선배가 쓴 기사다. 제목은 「김서령의 다정하고 고요한 물건들의 목록, 물목지전(物目誌展). 클릭!
고(故) 김서령 작가의 물목지전
기사는 고(故) 김서령 작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기 생과 함께해 온 물건들을 정리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죽음을 아키비스트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기록학적으로 인간의 생애는 수많은 데이터와 물리적 흔적이 모이는 하나의 큰 보관소이며, 죽음은 그 아카이브가 완성되고 폐쇄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김서령 작가의 ‘물목지전’은 자신의 아카이브를 정리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암 투병을 세상에 알린다. 몸이 나아진 어느 날 ‘그동안 아끼고 매만졌던’ 물건들의 목록을 만들고, 각 품목에 짧은 글을 덧붙여 전시회를 연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경매로 내어놓아 ‘자신의 눈길과 체온의 일부를 품고’ 새 인연을 찾아가게 한다. 그렇게 전시를 마치고 한 달 후, 김서령 작가는 세상을 떠났다.
ⓒ장영은, 김서령 페이스북 “크게 값나가는 건 아니지만 도대체 뭘 그토록 애착했는지 알고도 싶었고, 어떤 물건이 어떤 새 인연을 찾아갈지도 궁금했다. 물목을 만들어 놓으면 그게 한눈에 환하게 보이리라. …(돈을 받고 싶진 않지만 장소가 갤러리이고 팸플릿을 만들고 진열대를 짜는데 비용도 든다니 최소한의 가격을 붙이기는 붙여야 할 모양이다.…) 다시 새로운 아침을 맞는다. 차츰 밝아오는 하늘을 내다보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었구나. -김서령 2018년 8월 28일 “
나는 요즘, 뇌종양 판정을 받으신 시아버지의 투병을 지켜보며 생각이 많다. 그래서인지 ‘물목지전’과, 뒤이어 나오는 ‘죽음 정리’와 ‘엔딩노트’는 나를 더 깊은 사유로 끌어들인다.
잃어버린 임종신호
아버님은 가장 악성도가 높은 교모 세포종 환자다. 5년 전, 말이 어눌해지기 시작했을 때 “소리는 들리는데 이해가 늦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여러 차례 검사를 받으셨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운동을 거르지 않았던 아버님은 중년의 두 아들보다 체력이 좋으셨지만,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말하는 능력을 잃으셨다. 그리고 8개월 전, 갑작스러운 편마비와 함께 뇌암의 급격한 진행이 확인되었다.
어머님은 완치가 목적이 아닌 수술과 고된 항암 치료에 반대하셨다. 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보내시기를 바라셨다. 우리는 대학 병원에서 요양 병원을 거쳐 다시 아버님을 댁으로 모셨다. 아버님은 두세 달 사이 초점과 표정을 잃어갔고, 앙상해진 몸으로 자주 잠에 빠져 드셨다. 입도 잘 열지 않아 식사 때마다 애를 먹이셨다.
그러다 4개월 전, 아버님이 고열로 응급실에 실려 가신 날, 가족들은 연명 치료 포기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폐에 염증이 가득하다는 소견을 듣고 모두가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아버님은 기적처럼 그 고비를 넘기셨다. 대신 아예 입을 다무신 아버님의 코에 영양 공급 줄을 끼워야 했다.
이제 뇌 기능을 잃어가는 아버님이 주체적으로 하시는 단 한 가지는 콧줄을 빼내는 일뿐이다. 그조차 아버님의 의지인지, 무의식적인 행동인지 알 길이 없다. 전 날까지 어머님은 “곡기를 끊으면 사흘 안에 돌아가실 테니 그때 병원에 모시자”고 말씀했었다. 그런데 이제 가족들은 임종의 시점을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준비되지 못한 이별
콧줄을 낀 아버님은 다시 댁으로 모셔져서 어머님의 돌봄을 받고 계신다. 우리는 아버님이 곁에 오래 계시기를 바라면서도, 그것이 갈수록 커져가는 고통의 시간으로 이어지게 될까봐 두렵다. 아버님의 생이 닫혀가고 있지만, 무엇이 아버님을 위한 것인지도,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다.
더 가혹한 것은 앞으로 마주해야 할 선택이다. 만약 콧줄이 아버님의 고통을 연장하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그 줄을 어떻게 놓아드릴 수 있을까. 영양공급은 연명치료가 아니라 기본적인 돌봄의 영역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그 과정은 쉽지 않은 절차와 가족의 심적인 고통을 동반할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
만약, 아버님이 당신의 ‘아카이브 폐쇄’를 스스로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기사에서는 스웨덴의 ‘죽음 정리’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내가 죽고 난 뒤 남겨진 사람들이 그 짐을 떠안지 않도록”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종활(終活)’이라는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활동도 소개한다. 그 핵심은 법적 유언장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형태의 ‘엔딩노트’를 작성하는 데 있다. 의료 지침, 장례 희망 사항, 소중한 사람들에게 남기는 메시지 등을 그 안에 담는다.
스웨덴식 죽음 정리의 부드러운 기술 : 평생의 잡동사니로부터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 / 한국판 <내가 내일 죽는다면>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고민하던 때,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손자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요양병원에서 내 손을 당신 머리에 얹고 ‘기도’라고 써 보이시던 간절한 의지가 생각난다. 죽음 앞에서 아버님은 담담하면서도, 홀로 남을 어머님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이겨내고자 했었다.
만약 그때, 아버님이 물목을 정리하며 당신의 생을 다정하게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면, 물건에 얽힌 추억을 사랑하는 이들과 나눌 수 있었다면, 엔딩노트에 의료적 선택에 대한 뜻을 남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한편으로 그런 모습을 지켜볼 어머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것은 또 얼마나 힘드실까 싶다. ‘살아 있는 나’가 ‘죽어 있을 나’를 위해 구체적으로 죽음을 정리한다는 것은 아직 우리 문화에서 낯선 일이다. 그래서 오늘 날의 죽음이 어떤 의료적 결정을 거치는지 환자와 가족이 어떤 선택들을 마주하게 되는지를, 겪으면서야 알게 된 것 같다.
다시 편집자의 자리로
아, 상념이 길었다. 먹먹함에 잠겨 있는 사이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마감의 압박이 나를 현실로 불러 세운다. 잠시 쉬려다 만난 ‘인생 아카이브 폐쇄’라는 거대한 화두는 가슴 한편에 접어두고, 이제 다시 서툰 편집자의 자리로 돌아가야겠다. 숨을 한 번 크게 내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