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우주(유니버스) 탐험기 1
잠시섬에서 잠시 소풍(#1), 그리고 인터뷰(#2) _ 탐방
바다를 건너서도 달려간다, 마당발신!
7월 첫 주말 이른 아침, *산간고 앞에 마당발신 멤버들이 모인 건 갱년기 호르몬 영향으로 일찍 눈이 떠져서가 절대 아니다. 로컬 여행 협동조합을 인터뷰한다는 그럴듯한 명분도 있었지만, 하나씩 챙겨 온 간식만큼이나 설레는 소풍날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이라 차 막힐 일도 없었다. 시원하게 달려 도착한 곳은 바다 건너 강화도.
”동천동과 분위기가 비슷하네, 무슨~ 아닌데?”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며 주차한 곳은 인터뷰가 예정된 협동조합이 위치한 건물이었다.
시계를 보니 겨우 8시를 조금 넘긴 시간.
“밥 먹어야 할 텐데, 문 연 가게 있을까?”
여기서 짚고 가는 동천마을 사투리 하나!
산간고: 동천동에 있는 “산으로 간 고등어” 식당. 주차장이 매우 넓어 식당이 문을 닫는 시간에는 만남의 장소로 딱 맞다.
하나 더 짚고 가는 동천마을 오해 하나!
티키타카: 서로 주고받는 대화의 호흡이 잘 맞는 모습을 뜻하는데, 발음이 비슷한 풍덕천동의 책방 ‘티티카카’(남아메리카 호수 이름)과 혼동하기 쉬우므로 구분해서 사용한다.
오자마자 쇼핑?!
그 때 한 멤버가 “어? 오소소가 있네” 하고 반겼다. 유명한 곳인가? 갸우뚱하는 멤버들에게 “간판이 귀여워서” 라는 한마디에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기고 어느새 우리는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오소소’는 작은 물건들이 소복하게 쏟아지는 소리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라고 했다. 소나무가 즐비한 바닷가 오솔길을 떠올리게 하는 로고도 이름만큼 정겨웠다. 이곳에서는 강화 소창을 소재로 옷, 손수건, 파우치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고 있었다.
저마다 마음에 드는 옷을 집어 들고 거울 앞을 비출 때마다, 사장님은 그 옷만의 스토리를 유쾌한 어조로 들려주셨다. 직접 염색하고 재단해 탄생시킨 작품들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 진심에 이끌린 우리는 주말 아침 개시를 해드리며 잠시 머문 자리에서 저마다 뿌듯함을 느꼈다. ‘아, 이 알뜰한(?) 주부의 모습이란!’
옷과 소품도 인상적이었지만 한참 시선을 붙잡은 건 가게를 표현하는 브랜딩이었다. 지역의 가치를 함께 키워가는 외부와의 연대, 그리고 그 지원의 힘이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이 섬은 어떤 곳일까 증폭되는 궁금증을 뒤로 한 채, 아침식사를 하러 나섰다.
옛 흔적들의 흐름을 따라
간식 도시락을 나눠 먹자며 근처 공원을 찾아가는 길에는 오소소 만큼 궁금증을 자아내는 가게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능소화가 가득한 담벼락과 임금 행차 행렬 장식이 돋보이는 건물을 지나 걷다 보니 ‘웬, 아니 땐 굴뚝’ 하나가 보였다. 도시락 까먹으러 찾고 있던 공원 앞에 있는 이 굴뚝 기둥은, 1960~1970년대 이곳이 방직 기술로 유명한 지역이었음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궂은 날씨의 하늘을 업신여기듯 피어난다는 능소화. 여름의 시작을 알리며 골목 골목을 밝힌다.
심도직물 공장의 흔적
방직공장의 터였던 넓은 잔디의 용흥궁 공원 한편 정자에 잠시 앉아 오물쪼물 서로의 간식을 나누며, 우뚝 솟은 산의 정기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바다는 대체 어디 있나… 명색이 섬인데…”
묵직했던 짐의 무게를 몸으로 흡수하고 “이제 좀 구경 좀 해볼까?” 손을 털고 길을 나서니, 어느새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성공회 건물 앞에 다다라 있었다.
인도에서 들여온 보리수나무와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 건물이었는데, 당시 조선 사람들에게 익숙한 불교문화를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애를 쓴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세심하게 들려왔다. 벽을 따라 전시된 초가집 사진들은 ‘그땐 이 언덕 아래 정경이 이랬겠구나’ 잠시 음미하게 했다. 공사 중이라 안을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상상의 나래로 메꾸며 언덕을 내려왔다.
길 아래로 마을 정경을 둘러보다 보니 저편에 ‘강화 문학관’이 눈에 띄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또 옮겨가는 발걸음.
즉석에서 다음 행선지를 고르는 우리는 분명 다 P 성향일 거야.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에서는 강화읍이 내려다보인다.
강화에 별이 된 인재들
이런 공감각을 6세 아이가 느끼다니… 장난감이 전혀 없었던 옛 시절, 사방 천지 자연이 놀이터였구나. 아이를 산 중턱의 대안학교에 보낸 걸 괜히 흡족해하며 감상해 본다.
강화 문학관 1층에서는 고려시대 대문호 이규보를 먼저 만날 수 있었다.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던 시절 정착하게 된 그는, 여기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뜻이 되는 (떠난 미인을 원망하는) 회문 시와 신동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6살 때 썼다는 시는, 누구나 한 번쯤 내 아이가 천재였으면 좋겠다고 상상해 본 엄마의 마음을 감동하게 했다.
2층에서는 수필가 조경희 선생님의 작품 소개와 집필 공간, 그리고 그분의 소장품이었던 예술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강화도에 피어난 문학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더더욱 이 섬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문학관 큐레이터께서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 선생님이 아직 강화에 계신다고 소개하셨다. 들어오기 전 골목길에서 본 부고 현수막이 떠올라 조심스레 "조금 전 별세 소식을 봤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잠시 숙연해진 분위기를 뒤로하고, 예약한 잠시섬 프로그램 체험 시간이 다가와 협동조합 건물로 향했다.
강화의 잠시섬 프로그램 체험
잠시섬, 이름만 들어도 일단 멈추라는 뜻이 읽혀 숨을 한번 고르게 된다. 강화 유니버스의 대표적인 로컬 체류형 여행 프로그램인 만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협동조합 청풍 대표를 인터뷰하기에 앞서 직접 경험해 보기로 했다.
여기서 잠깐!
강화 유니버스: 2021년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계기로 탄생한 브랜드다. 강화에 관심을 가진 외지 청년들이 지역과 관계를 맺고 정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 로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협동조합 청풍의 활동 거점인 ‘유유기지 강화’의 문을 열자, 밖에서 보았던 오래된 시장 상가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그 대신, 누군가의 꿈과 성실함이 쌓여 돋보이는 공간이 펼쳐졌다. 쉼의 여유를 충전 함과 동시에 무엇이든 창작해 볼 수 있는 공간까지, 심지어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를 위한 티백 하나에도 다양한 취향을 염두에 둔 배려가 엿보였다.
우리가 들을 수업은 ‘이모티콘 만들기’였는데, 강사 분은 타지에서 이주해 살고 계신 그림책 작가셨다.
36개의 이모티콘을 완성하려면 무엇보다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며 하나하나 꼼꼼히 설명해 주시는데, 침침한 눈이지만 감히 게으름을 피울 수 는 없었다. 문장 몇 개와 표정만 그리면 되는 줄 알았던 우리의 오만. 이모티콘 하나에도 책을 완성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내가 스토리로 만들고 싶은 건 뭘까?’
항상 듬직한 그 덩치, 우리 고양이였다. 아이가 방학을 하면 같이 완성해 보자 다짐을 하며 사용법을 차곡차곡 새겨 넣었다.
다른 한 분의 참가자도 계셨는데, 이곳에 발령받은 학교 선생님이라고 하셨다. 앞으로 이곳을 제집처럼 드나드시게 될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우리 냥이랑 돗자리 깔아?)
6시에 집을 나와 원데이 클래스가 끝난 시각은 고작 12시.
오전 내내 강화를 걷고, 둘러보고 사람들을 만나며 남은 생각은 하나였다.
“어서 오시겨”
토박이 사투리를 쓰시는 지역 주민들이나, 타지에서 건너와 삶의 터전을 꾸린 청년들이나, 이 유쾌한 기운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반경 300미터 남짓 둘러봤을 뿐인데, 어쩜 이렇게 듣고 볼 이야기가 많을까?
그림책 작가이신 이모티콘 강사님의 말씀처럼 그랬다.
‘여기는 롯~데~월드’가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섬, 강화였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여다보기 위해, 협동조합 청풍의 인터뷰는 다음 편에서 들려드리기로 하고 잠시 숨을 고른다.
To be continued…
다음 이야기는?
#협동조합청풍 #청년마을 #강화유니버스 #로컬브랜딩
"사람을 모으는 힘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잠시섬의 세계관 키워드 _ #로컬 #주체성 #존중 #다양성 #소풍 #재발견 #생태 #환경 #안심 #즐거움 #연결
글 : 보노보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