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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중지 시리즈2 - 내가 마당을 애지중지하는 이유

발행호
vol.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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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뭐든
작성일시
2026/09/13 11:55
최종 편집 일시
2026/09/15 05:14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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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과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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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당’을 애지중지하는 이유

애지중지 시리즈2
어느 날부터인가 가진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욕심이나 욕망에 속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럼에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게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아닐까. 나에게 그런 것이 무엇인가 질문하면 슬며시 찾아오는 답이 하나 있다. 작은 마당이다. 그 작은 마당에는 나와 상관있는 혹은 나와 상관없는, 쉬지 않고 피어나고 사라지는 생명이 있다. 나는 마당을 그리고 마당이 품은 생명들을 애지중지하고 있다.
봄
봄은 생명들의 수줍음과 환호를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봄이 오면 쌓였던 낙엽을 제일 먼저 뚫고 나오는 녀석들이 있다.
①Snowflake, 아직 한국어로 뭐라하는 지 못찾고 있다. 설강화인가 했는데 설강화와 달리 꽃잎 끝에 초록 점이 있다고 한다. 이 녀석은 절대 고개를 들지 않는다. 언제나 한 자리에서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
그리고 봄이 오면 나는 막대기를 들고 ‘여기가 분명한데...’기억을 더듬으며 쌓인 낙엽 더미를 파헤친다. ②~④매발톱이 어김없이 어린 초록잎을 돌돌 말고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날이 따뜻해지면 자주색, 보라색, 흰색꽃으로 마당을 가득 채워준다. 이 녀석들은 절대 고개를 들지 않는다. 그 속을 알기가 어렵다.
봄마당에는 꽃마리를 뻥튀기 기계에 넣어 3배로 크게 만들어놓은 것 같은 ⑤ 물망초. 겨울에는 줄기와 잎이 시들어버리지만 그 추위에도 땅속에서 긴 잠을 자고 봄만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워 내고, 땅에 떨어진 씨앗들은 3~5년의 충분한 잠을 자고서야 싹을 피워내는 ⑥ 작약, 두 장의 잎 사이에 숨어 향기로 유혹하는 요정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을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되는 ⑦ 은방울꽃, 꽃잎과 줄기 등 온몸을 덮은 흰털과 고개 숙인 모습이 할머니를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⑧ 할미꽃, 한 해 가득 피어난 뒤, 게으른 주인을 만나 알뿌리를 제대로 보관해주지 않아 흙과 함께 여기저기 이산가족이 되어 이제는 예기치 못한 곳 여기저기서 싹을 틔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는 ⑨ 튤립, 그리고 나에게만 봄마당의 여왕이 되어버린 ⑩돌나물이 있다. 돌 위에 던져놔도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돌나물, 봄만 되면 나의 일상은 돌나물을 캐고 다듬고 씻는 일로 바쁘다. 깨끗하게 씻은 돌나물을 두통씩 담아놓고 하루 한 끼 초고추장과 참기름을 두른 돌나물 비빔밥을 먹는다. 나뭇잎을 닮은 몸에 엽록체를 갖고 사는 식물도 동물도 아닌 푸른민달팽이라는 녀석이 있다는데 이렇게 돌나물 비빔밥을 먹으면 나도 엽록체를 갖게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게 돌나물꽃이 봄나물꽃의 여왕이라면 봄나무꽃의 여왕은 ⑪자두나무꽃이다. 자두나무, 벚나무, 앵두나무, 매실나무, 살구나무, 복사나무 등 비슷한 나무의 꽃들이 있다.
대부분 화려하고 빛나는 자태를 뽐내는 사이 자두나무는 조심스럽고 수줍은 파릇파릇한 새싹을 생각나게 한다. 멀리서 보면 연하고 순한 연둣빛으로 구별할 수 있다. 가까이 보면 작고 앙증맞은 꽃들이 고개를 모아 속삭이고 있는 듯 하다. 자두나무꽃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강하고 달콤한 향기다. 화려한 모습보다 강한 향기에 더 애썼던 모양이다. 그래서 난 이제 봄밤의 정취를 자두나무꽃 향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우리집 마당에 자리잡은 지 4~5년쯤(?) 된 ⑫ 감나무는 올해 처음 꽃을 피웠다. 일조량이 부족한 곳에 심어놓은 부족한 집주인 탓에 첫 꽃을 피우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나 보다.
봄이면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잡초라 불리우며 무시당하는 풀들이 마당을 가득 채운다. 이름에 봄을 담은 봄까치꽃(사실 원래 이름이 민망해서 봄까치꽃이라 부르자고 한다. 원래 이름은 큰개불알풀꽃), 처음 이사 와서 여리게 피어나는 꽃들을 차마 뽑지 못하고 있다가 마당 한가득 피어나 결국 뽑느라 애먹었던 꽃마리, 개미가 씨앗을 여기저기 옮겨 주는 덕분에 한 해만 지나도 온 마당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는 온갖 생김새의 제비꽃(여러 종들이 만나 변이종을 많이 만들어내어 식물계의 카사노바라고 한다.), 아직 덜 자란 어린 잔디 위로 마치 날 빨리 뽑아내라는 듯 딱 한 줄기씩 쑥 빼고 위로만 자라나는 작은개불알풀꽃(이녀석도 꽃색이 푸른색이다), 그 외에도 주름잎풀꽃, 새포아풀, 개미자리, 길골풀 등등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이 마당을 가득 채운다. 친정 엄마는 지섬(잡초의 경상도 사투리)를 저렇게 놔두냐고 타박을 하시지만 다 꽃도 피고 씨도 맺는 녀석들이니 일단 봐주자며 감히 해선 안 될 짓을 하기 일쑤다. 그렇게 봄을 보낸다.
여름
여름이라는 계절은 모든 생명들에게 놓칠 수 없는 계절이다. 몸을 키우기 위해 자손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꽃을 피우고 그 꽃을 먹기 위해 곤충과 새들도 분주한 계절이다. 마당 넘어 자란 산딸나무는 물까치, 직박구리, 박새들의 화려한 식당이 되어 넘쳐나는 손님을 받느라 분주하다. 회향목꽃이 피면 멸종을 걱정하는 벌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여 붕붕거리며 꿀을 모으느라 바쁘다.
① 불두화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② 현무잎벌 애벌레가 하얀 털로 제 몸을 감싸며 나의 비명을 즐기기 시작한다. 층꽃과 포도꽃이 피면 ③ 박각시 나방이 쉼없는 날개짓을 하며 피곤을 모르는 듯 긴 빨대를 꽂아 꿀을 빤다. 배추꽃, 겨자꽃, 쑥갓꽃, 열무꽃들은 짝짓기와 꿀을 모으려는 나비들과 함께 춤을 춘다. 가끔 ④ 나비들의 짝짓기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민망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겨울을 견뎌낸 알에서 깨어난 ⑤ 잎벌 종류의 애벌레들이 벚나무잎, 복분자잎에 똘똘 뭉쳐 먹성을 자랑한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갈 준비를 한다. 빨강 초록 보색의 대비를 뽐내는 화려한 등껍질을 자랑하는 ⑥ 큰광대노린재도 마당의 단골손님이다. 처음에는 그 화려한 빛깔에 귀한 천연기념물이 우리집에서 발견된건가?하는 철없는 생각도 했었다. 강아지풀도 알고 보면 꽃이다. 사람눈엔 너무 못나 꽃이라 부르지도 않은 것일까? 우리는 못난 사람을 호박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내 눈엔 ⑦호박꽃도 예쁘다. 여름엔 그 거침없는 덩굴로 나무이든 풀이든 모든 것을 감싸며 마당을 압도하는 호박이 최고의 권력자로 보인다. 분혹, 빨강 빈대떡이 나무에 매달려있는 듯 커다랗고 동그랗게 핀 ⑧부용은 마당의 군계일학이다. 꽃이 저렇게 커도 되나?싶었다. 강아지풀, 여뀌, 닭의장풀, 깨풀 등의 풀들이 자라면서 우리집 마당은 아우성대는 꽃과 풀들로 초록빛이 넘쳐나는 접근금지구역이 늘어간다. 물론 접근금지구역 제일의 주인공은 모기다. 모기물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날도 있었다. 다시 그렇게 여름을 보낸다.
가을
① 가을이 오면 열심히 여름을 살아낸 마당의 주인들이 긴 휴식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잎벌레들에게 먹이가 되어주고도 남은 잎들은 겨울을 위해, 그리고 이듬해의 새로운 탄생을 위해 떨어진다. 화려했던 꽃들은 씨앗을 남긴다. 부추, 명이, 파, 달래등 알뿌리들은 흰꽃을 피우고 ② 검은 씨앗을 남긴다. ③ 꽃들이 떨어져 주변과 어우러진다.
겨울
겨울이 오면 초록 아우성들이 사라지고 하얀 고요함이 내려앉는다. 2년전 습설에 나무들이 꺾였고 마당 한가운데 별수국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줄기가 처져서 모양이 바뀌었다. 경계목이었던 측백나무들이 속절없이 부러졌고 그 녀석들은 다시 회복의 기미를 보여주지 않는다. 조금 더 기다려 볼 참이다.
다시 나타나주길
마당에 새식구를 들이기 위해 꽃집에 가면 항상 월동이 되느냐고 묻는다. 한해살이풀이나 꽃보다는 해마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다시 나타나주지 않는 녀석들이 있다. 한 두 해 자라다 영영 사라져버렸다. 해를 거듭할수록 왜소해지거나 모양이 변형되거나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리곤 다시 나타나질 않는다. 다시 나타나면 참 좋겠다.
언제나 함께 해주어 고마워
잊지 않고 마당의 주인임을 증명해주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포도, 돌단풍, 당귀, 별수국, 금불초, 맥문동, 애기범부채 등등. 포도를 제외하고 이 녀석들은 지나치게 힘을 자랑하지 않는다. 자기자리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라며 언제나 한결같은 꽃을 피워낸다. 그래서 고맙다. 간혹 나의 게으름이 보상받을 때도 있다. 열무, 쑥갓, 겨자, 미나리를 심어놓고 먹다 먹다 못 먹고 지켜보다 보면 그 녀석들도 예쁜 꽃을 피운다. 쑥갓꽃이 들국화를 닮았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기 담지 못한 녀석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고 있다.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다. 이렇게 된 마당에 애지중지하는 게 너무 많아져 버렸음을 깨달았다. 욕심이나 욕망을 버리고 살자고 해놓고선 이렇게 많은 걸 애지중지하면서 살고 있었다니…… 한편으로는 그래도 되나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그래서 다행이구나 싶다. 어느 순간 모든 것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나는 어느새 그 끝에 가깝게 서 있다고 생각했다. 작은 마당 안의 뭇 생명들이 그런 나를 다시 손잡아 제자리로 데려다 놓았나 보다. 풀을 뽑고 나무를 자르고 흙은 돋우며 나의 손가락은 굽어 가지만 이 녀석들을 애지중지하는 마음은 한 길을 가고 있나 보다.
글 : 아무님